종합

[CES로 보는 미래④] 결국은 ‘휴머노이드’다

로봇신문사 2025. 1. 13. 16:03

 

첨단기술 각축전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5’가 7일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식 개막했다. CES는 각 기업이 실용화를 코앞에 둔 첨단기술을 소개하는 자리다. 실제 수개월 이내에 상용화되는 기술도 많아 ‘현실이 될 미래’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라는 평가가 많다.

올해 행사는 전 세계 160개국에서 약 4500개 기업이 참여하며 사실상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주제는 ‘Connect. Solve. Discover. DIVE IN.(연결하고, 풀고, 발견하고. 뛰어들어라)’. 약칭으로 ‘DIVE IN’만 적고, 그 뜻을 ‘몰입’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로봇과 AI’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상에 ‘집중적으로 도전하자’는 의미는 잘 전달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래 사회에 뛰어들기 위해 우리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로봇기술’이다. 인공지능(AI)과 더불어 세상의 변화를 끌어내는 양대 축이기 때문이다.

로봇신문은 CES 2025를 통해 소개되는 다양한 로봇기술을 집중 분석해보는 기획 시리즈를 총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게재 순서는 ①모빌리티 ②라이프 ③산업 ④휴머노이드 (편집자)

 

올해 CES 2025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을 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세계적 기업들의 손끝이 휴머노이드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물리 AI(Physical AI)를 소개하며, 협업 로봇 기업들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까지 했다. 사실 젠슨 황은 지난해 6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 행사 키노트에서도 이번 CES 기조연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그는 “생성형 AI에 이어 물리 AI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휴머노이드를 포함한 로봇이 그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큰 흐름으로 여겨진다. 국내기업 삼성과 LG 등도 휴머노이드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중국에선 유니트리 등 다수 업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실물을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 흐름이 어디서 비롯됐느냐다. CES가 현재 기업들이 주목하는 시장의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부쩍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쩍 휴머노이드가 이처럼 부쩍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걷는 것만으로 신기했던 시절

 

 

▲ 일본 혼다가 개발한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 발표 당시 미려한 운동 능력을 선보여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세계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 붐이 일었다. 개발후 25년이 경과했지만 현재 시각에서 보아도 대단히 완성도가 뛰어나다. (출처=혼다)

 

로봇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시모’란 이름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 ‘혼다’가 2000년 선보인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다. 아시모를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실험용 로봇은 빼고, 기업에서 완성형 로봇으로 선보인 최초의 로봇’이라는 상징성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아시모 이전에도 많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개발됐다.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마도 와세다대 연구진이 1966년 개발한 ‘와봇’일 것이다. 철골 프레임에 가까운 형상이지만 아무튼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최초의 기계장치였다. 그 이후 와세다대 연구진은 계속해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구해 왔고, 뒤를 이어 혼다 자동차도 휴머노이드 연구에 뛰어든다. 1986년 두 다리뿐인 실험용 휴머노이드 ‘E0’ 모델 개발을 시초로 E1~E5를 연이어 개발, 총 6대의 E시리즈 로봇을 개발한 데 이어, 1993년 상반신을 추가한 P시리즈 모델을 개발했다. P1, P2는 상당히 대형이었지만, P3는 아시모의 형태와 상당히 닮아있다. 이 시절 확보한 기술이 아시모 개발로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아시모가 등장한 이후 세계 휴머노이드 연구는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와세다대와 혼다 연구진만이 도전하던 분야였는데, 아시모가 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자 ‘우리도 한 번 개발해 보자’는 흐름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내에선 P시리즈 개발에 참여했던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가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HRP 시리즈 개발을 시작했고, 혼다의 라이벌 도요타도 ‘파트너’란 로봇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 한국형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의 대표 격인 로봇 ‘휴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개발했다. 왼쪽부터 휴보-1, 휴보-2, DRC휴보. DRC휴보는 재난 상황에 복구작업을 벌일 수 있도록 개발됐다. KAIST 연구진은 이 로봇으로 미국 국방성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재난 로봇 대회 로보틱스 챌린지(DRC)에서 우승해 화제가 됐다.

 

이 분야에서 일본 이외에 가장 앞서던 나라가 의외로 한국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오준호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휴보’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당시 휴보 연구진은 개발 당시부터 ‘아시모에 자극을 받아 개발을 시작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실험용 로봇 KHR-1부터 시작해 KHR-2가 만들어졌고, 이렇게 쌓인 기술이 2004년 KHR-3(휴보-1) 개발로 이어졌다. 성능을 한층 더 높인 휴보-2, 재난구조용 로봇 DRC휴보 등이 연이어 개발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진이 개발을 주도한 ‘마루’도 있어 당시 한국은 나름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 선도국에 속했다. 미국이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버지니아텍 연구진이 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 ‘찰리’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로봇 개발사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현재 가장 고성능의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알려진 ‘아틀라스’ 개발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 당시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의 주된 방향은 ‘기계장치로 인간의 몸동작을 얼마나 흉내 낼 수 있느냐?’ 였다. 우리가 더 고성능 로봇을 개발했다. 우리가 인간의 움직임에 가까운 로봇을 개발했다는 기술 경쟁이었던 셈이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로봇, 사람처럼 달리기하는 로봇, 사람처럼 짐을 들어 옮기는 로봇 등이 경쟁적으로 개발됐다. 미국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나믹스 연구진은 심지어 고난도 체조 동작을 하는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구르고, 점프하고, 심지어 공중으로 뛰어올라 뒤로 한 바퀴 도는 ‘백플립’ 기술까지 선보이기도 했다.

 

 

 

▲ 미국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개발한 바 있는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구 버전. 운동능력 면에선 현재까지 개발된 휴머노이드 로봇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보스턴 다이나믹스 유튜브 영상 캡처)

 

지금과 같이 고도화된 인공지능(AI) 기술이 없던 시절, ‘학습’이란 과정을 통해 로봇의 걸음걸이를 세련되게 다듬으려다 보니 당시 개발진들의 노고는 이루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연구자들은 로봇이 걷게 만들기 위해 로봇의 보행 알고리듬을 일일이 점검해가며, 발끝 센서에 걸리는 조그만 압력변화에 따라 전신의 모터를 모두 조금씩 조종해야 했다.

 

‘일하는 로봇’ 개발 경쟁 시작

 

‘휴머노이드 로봇은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로봇을 만들 때는 설계과정부터 목적이 있다. 청소 로봇은 청소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식이다. 반면 과거 휴머노이드 로봇은 개발 목적 자체가 ‘인간을 닮은 어떤 것’이다. 로봇이 걷고, 뛰고, 구르고, 춤추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로봇에게 뭔가 ‘일’을 시키려고 하면 뭔가 제대로 하는 모델을 찾긴 어려웠다. 당시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자들이 애써 외면했던 부분은 ‘일을 한다’는 사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실 기계적 성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사람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명확하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다양한 일을 잘하는 사람이 꼭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일을 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운동 능력은 꼭 갖출 필요가 있지만, 어느 정도 기본적인 운동능력만 확보하면 그다음부턴 지능이 가장 중요시된다.

 

 

 

▲ 미국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개발하고 있는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최신 버전. 기존 유압식 구동장치를 포기하고 전기모터를 이용해 만들었다. 최근 공장 내부에서 완전 자동으로 부품을 선반에 옮겨 넣는 작업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출처=보스턴 다이나믹스 유튜브 영상 캡처)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사람들은 정해진 세트에서 걷고 달리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로봇을 더는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결국 ‘시큰둥’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제어 기술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보스턴 다이나믹스 역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고, 지금은 우리나라 현대차가 소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바뀐 것은 불과 수년 사이다. 분위기 전환의 물꼬를 튼 건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일 것이다. 테슬라는 직접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개발해 공개했는데, 로봇의 기계적 완성도나 운동 능력은 아시모나 아틀라스에 비할 것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테슬라는 이 로봇에 AI를 접목, 실제로 여러 가지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 세우며 많은 관심을 얻었다.

 

그 결과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자들은 ‘체조 동작을 해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일(작업)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전면에 내 세운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도 아틀라스가 화려한 백플립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하기보다는 ‘이 로봇은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을 적재함에 옮겨 넣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 미국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가 개발하고 있는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인공지능(AI) 기능을 크게 강화해 다시금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 붐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출처=테슬라)

 

그리고 여러 기업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면서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것은 대규모 설비와 많은 인력이 필요한 자동차 회사들이었다. 테슬라는 자사의 옵티머스를, 현대차는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신형 모델을, BMW는 2022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창업한 신생업체 ‘피규어 AI’사가 개발한 ‘피규어’ 로봇을 실제로 공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미국 내 자동차 공장에서 미국 ‘앱트로닉’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폴로’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물류 분야에선 아마존이 애질리트 로보틱스가 개발한 로봇 ‘디지트’를 도입하기로 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세상은 이미 코앞에 와 있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실용화가 가장 먼저 공장에서 이뤄지는 것은 ‘주위 환경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AI와 휴머 노이드 로봇 하드웨어를 이용하면 단순 반복작업 정도는 적응할 여지가 크다. 다만 가정에서 집안일을 척척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답을 내리기 어렵다. 기술이 급성장한다면 실제로 식당 등 서비스 산업에서, 나아가 가정에서 가사업무를 볼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도 언젠간 등장하겠지만, 생각만큼 원활한 서비스를 할 수 있을지는 아직 기술적으로 미지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숙제에 국내기업 LG전자가 이번 CES에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가사용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목표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번 CES 현장에서 조주완 LG전자 CEO는 8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홈(집) 영역에서도 뭔가 준비를 하고 있다”며 “가사 로봇, 가사 휴머노이드 등의 개념을 가지고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했다. 김병훈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도 “가사용 휴머노이드(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상당히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도전이 어디까지 성공할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만 있다면, ‘로봇 가사도우미’가 우리 집에서 귀찮은 설거지를 대신 해 줄 날은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승민 기자 enhanced@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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