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환 변리사
최근 언론 보도에 기술유출 범죄 사건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분야의 기술 자료가 주로 유출되고 있다. 하지만 로봇 분야도 예외일 수 없다. 며칠 전 중국 국적 연구원이 첨단 의료로봇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피의자가 서울 한 종합병원 산하 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혈관중재시술 로봇 도면,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파일 등을 포함하여 1만여 건의 자료를 무단 유출한 것이다.
필자는 작년 말까지 수원지검 산업기술유출범죄수사부에서 검찰 전문경력관으로 근무하였다. 그 당시 1년 넘게 세메스의 반도체 세정장비 기술유출 사건을 수사하였는데, 이송로봇 관련 자료도 기술유출 대상 중 하나였다. 이송로봇은 세정장비 내부를 이동하면서 챔버(chamber)로 웨이퍼를 이송시키고, 세정이 완료된 웨이퍼를 다시 이송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로봇이다. 챔버란 공급된 약액에 의해 웨이퍼 상의 불순물 등을 제거하는 세정공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말한다.
수사 과정에서 이송로봇을 구성하는 수백 가지 부품에 대한 설계도면, 전원 공급 등과 관련된 전기장치 도면, 이송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각 부품 조립 방법, 성능 테스트 방법 등이 모두 문제 되었었다. 피고인들은 '세메스 협력사로부터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자료이다' 혹은 '세메스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체득된 경험에 의해 설계하여 유사할 수밖에 없다' 등의 주장을 하였다. 하지만 100만 개 이상의 전자정보 등 압수물을 분석한 결과, 피고인들이 세메스의 이송로봇 관련 자료를 무단 반출한 후 이를 사용하여 중국 업체를 위한 이송로봇을 설계하고 중국 현지로 수출까지 한 사실 등을 밝혀냈다.
피고인들은 처벌을 받겠지만 그뿐이다. 이미 유출된 이송로봇 포함 세정장비 기술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세메스가 삼성전자와 협력하여 수년간 많은 비용, 시간, 노력을 투입하여 얻은 결과물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안타깝지만 재발 방지와 후속 조치에 만전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앞에서 이송로봇 관련 자료에 대해 소개하였지만, 로봇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중요 자료는 이와 대체로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검찰에서 근무하며 경험하고 느낀 점을 토대로 아래에서는 로봇 기업이 기술보호를 위해 참고할 만한 사항을 공유하려고 한다.
1) 산업기술 확인 신청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 첨단기술 등 '산업기술'에 해당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현행 고시에 의하면 복강경, 내시경 및 영상유도 수술로봇 시스템의 설계/제조 기술 등 3가지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제조업용 로봇, 개인서비스 로봇, 전문서비스 로봇 등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이 산업발전법 제5조의 첨단기술로 고시되어 있다.
만약 보유기술이 산업기술에 해당한다면 그 확인 신청을 해두는 것을 추천한다(산기법 제14조의3). 그와 동시에 산업기술 취급 임직원(협력사, 거래처 직원 포함)이 비밀유지의무를 가지도록 비밀유지서약서를 징구하도록 하자. 산업기술에 대한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기관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유출하거나 그 유출한 산업기술을 사용하는 행위 등을 하면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산기법 제36조제2항, 제14조제2호)
한편 산업기술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서의 영업비밀과 달리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의 요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산업기술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밀유지의무의 대상이 되고, 그 산업기술과 관련하여 특허등록이 이루어져 산업기술의 내용 일부가 공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산업기술이 전부 공개된 것이 아닌 이상 비밀유지의무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다(대법원 2021. 5. 7. 선고 2020도17853 판결 등). 따라서 보유기술을 산업기술로 인정받는다면 영업비밀로 보호받지 못하더라도 산업기술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 원본증명서비스 활용
보유기술을 영업비밀로 보호하고 있는 기업이 상당히 많은데, 기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소 로봇 기업의 경우 인력, 자원 등이 부족하여 보유기술을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보유하고 있었는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경우 영업비밀 원본증명기관(한국지식재산보호원)의 원본증명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부경법 제9조의3). 중요 자료의 전자지문을 원본증명기관에 등록하면, 원본증명서를 발급받은 자는 등록 당시에 해당 중요 자료의 기재 내용대로 정보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부경법 제9조의2). 이러한 원본증명서는 일반 정보와 영업비밀을 구분하여 관리한 사실을 입증하는 데에 용이하게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임직원에게 해당 자료가 비밀로 유지, 관리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인식시키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3)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
산업기술 확인, 영업비밀 관리와 더불어 특허권 확보를 병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개될 수밖에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특허로,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영업비밀로 보호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특히 로봇의 경우 소비자나 산업계에 공개된 이후에 분해 등을 통해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법원은 역설계를 통해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해당 정보가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고 있기는 하다(대법원 2022. 6. 30. 선고 2018도4794 판결 등). 하지만 용이하게 역설계가 가능한 부분을 비롯하여 로봇의 특징적인 기능, 제어 알고리즘 내지 독특한 사업모델에 대해서는 특허로 보호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임시명세서 제도, 국내우선권/조약우선권 주장 제도, 분할출원 등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유출은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젠가 우리 기업의 일이 될 수 있다. 기술력에 강점이 있다면 그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당연히 필요하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으면 기술유출 발생 시에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부디 앞서 살펴본 방법들이 로봇 기업의 기술보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이동환 변리사는 한양대에서 전자통신컴퓨터를 전공하고, 2010년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법무법인에서 5년간 IP 분쟁 사건을, 국내 1호 변리사 출신 대검찰청 전문경력관으로서 IP 범죄 및 기술유출 사건을 각각 담당했다. 인공지능, 로봇, 블록체인, IoT 기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해 3월부터 한양대(에리카) 창업교육센터 겸임교수로서 예비창업자들을 위해 지식재산권 강의를 하고 있다.
이동환 dhlee@we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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