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 한재권, 엄윤설 박사가 이끄는 한양대학교 ERICA 히어로즈(HERoEHS) 팀은 로보컵에 참가하기 위해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8년과 2019년 로보컵 본선에 오르며 한국의 휴머노이드 기술력을 세계에 증명해 보였던 히어로즈였기에 조금은 부담을 안고 오른 출국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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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전날 히어로즈팀. “대한민국 국가대표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가장 크고, 권위 있는 세계 로봇 대회 <로보컵(RoboCup)>
‘로보컵’이라고 하면 흔히들 로봇 축구를 떠올린다. 틀린 건 아니지만 사실 이는 로보컵에 대한 한정적 정보일 뿐이다. 1997년 시작된 로보컵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권위 있는 로봇 대회로 전 세계 로봇 공학도와 로봇 공학자가 한 자리에 모여 기술력을 겨루는 축제의 장이다. 2002년, 로보컵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리그가 추가되면서 더 큰 명성을 얻었지만, 축구뿐 아니라 산업 자동화, 재난 구조 등 다양한 분야의 리그가 이뤄지고 있다.
그중 히어로즈 팀이 출전한 휴머노이드 어덜트(Adult) 사이즈는 출전만으로도 기술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까다롭고 어려운 리그로 손꼽힌다. 어덜트 사이즈 로봇은 키가 130~180cm로, 크기가 큰 만큼 안정적인 2족 보행을 하는 게 쉽지 않다. '발을 크게 만들어 안정성을 높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오산이다. 로봇의 신체조건에 대한 엄격한 대회 규정이 마련되어 있어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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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펙션(Inspection)하는 히어로즈. 발 크기, 무게 중심, 대각선 길이 등을 정확히 체크!
또한,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센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까다로운 규정도 존재한다. 자율주행 로봇, 배송 로봇 등에 쓰이는 ‘라이다(LiDAR) 센서 없이 장애물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상황 판단 또한 로봇 스스로 구현해 내야 하는 것이다.
로보컵이 이처럼 엄격한 대회 규정을 만든 건 로보컵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2050년 휴머노이드 로봇 팀이 월드컵 우승 팀을 상대로 경기를 치르고, 승리를 거두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년 경기 규정은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며, 각 국의 로봇 엔지니어들은 까다로워지는 경기 규정에 맞춰 기술을 수정, 보완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센서는 일절 사용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로봇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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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중인 앨리스
우승과 발전 사이, 경쟁과 우정 사이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휴머노이드를 제작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휴머노이드 어덜트 사이즈 리그 참가 팀은 많지 않다. 2019년에는 전 세계에서 6개 팀이, 올해는 4개 팀이 참가했다. 히어로즈의 엘리스(ALICE)는 키 130㎝에 몸무게 20㎏으로, 키네틱 아티스트 엄윤설 박사의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로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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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중 가장 아름다운 로봇. 히어로즈의 엘리스
엘리스는 2022 로보컵에서 한재권 박사의 스승인 데니스 홍 박사가 이끄는 UCLA 로멜라(RoMeLa)와 본 경기를 치렀고, 2대 0으로 승리했다. 경기 직후 데니스 홍 박사는 한재권 박사에게 밝은 표정으로 축하를 건넸다. 승패가 존재하는 대회임에도 어떤 팀과 경쟁하든, 승부와 상관없이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로보컵에서 흔한 풍경이다.
2018년과 2019년 우승 팀인 독일의 ‘팀 님브로(Team nimbro)'는 명실상부한 휴머노이드 어덜트 최강 팀이다. 히어로즈는 이번 로보컵에서 처음 팀 님브로를 상대로 골을 넣었는데 그때도 상대편에서 축하의 말을 전해 왔다. 이는 함께 대회를 치르는 팀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상대도 열심히 노력한 것을 알기에 그 노력에 걸맞은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는 것이다. 대회 우승만큼이나 값진 것이 발전이고, 경쟁보다 앞서는 것이 우정임을 이들은 알고 있다. 지금은 서로의 상대가 되어 경쟁하고 있지만 결국 로보컵의 목표인 월드컵 선수들과의 대회를 위해 동반 성장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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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어덜트 최강팀 독일 ‘팀 님브로(Team nimbro)'
올해 로보컵에 출전한 한국 국가대표는 히어로즈 외에도 한 팀이 더 있다. 휴머노이드 키즈(Kids) 사이즈 리그에 출전한 광운대학교 ’로빛‘이다. 히어로즈와 로빛은 대회 전부터 연대하며 함께 성장해 왔다. 히어로즈는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로보컵을 준비해온 로빛과 함께 3박 4일의 합숙훈련을 하며 대회 준비를 마쳤다. 로봇의 크기는 다르지만, 휴머노이드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두 팀은 그 무엇보다 끈끈한 연대감을 가진다. 국내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휴머노이드를 연구, 개발하고 있기에 어려움도 많지만 그만큼 큰 자부심과 신념으로 휴머노이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로빛은 16일 3~4위전을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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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키즈 사이즈 리그에 출전하는 광운대 ’로빛‘
7월 16일 결승 경기, 우승컵보다 값진 최선도 있다.
한국시간으로 오후 12시 30분에 치러지는 로보컵 결승전. 히어로즈는 독일의 팀 님브로와 결승에서 맞붙을 예정이다.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느냐는 질문에 엄윤설 박사는 상상을 비껴가는 답변을 내 놓았다.
”내일 경기는 분명 질 거에요. 팀 님브로와의 격차가 눈에 보이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이미 질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놓고 경기에 임하는 건 진짜 진거 잖아요. 그래서 지더라도 멋있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한계를 넘는 거니까요.“
엄윤설 박사의 답변 속에는 휴머노이드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숨어 있다. 한국에는 로봇공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휴머노이드는 연구자가 더욱 적다. 그래서 로봇공학과가 있는 한양대 ERICA가 한국 휴머노이드의 발전을 이끄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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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결과에 사인하는 팀 리더, 엄윤설 박사
2011년, 로봇 찰리가 로보컵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 트로피에는 ’2011, team CHRALI, USA’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때 엄윤설, 한재권 박사는 ”저 우승컵에 반드시 KOREA를 새겨서 돌아가겠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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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간을 아끼기 위해 호텔에서도 각자의 임무를 수행 중인 히어로즈 팀원들
팀을 꾸린지 5년, 아직은 세계 무대의 높은 장벽을 확인하는 순간이 많지만, 그동안 쉼 없이 노력해온 만큼 발전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멈추고, 로보컵도 멈췄을 때도 이를 기회라 여기고 자체 로보컵인 ‘히어로즈컵’을 개최하며 땀 흘려온 결과는 엘리스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저장되어 실행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 세계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히어로즈와 로빛은 성장 중이다. 한국 로봇산업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경기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m.twitch.tv/robocuphumanoidfiel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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