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로봇 공학자(Young Robot Engineer)' 코너는 한국로봇학회와 로봇신문이 공동으로 기획한 시리즈물로 미래 한국 로봇산업을 이끌어 갈 젊은 로봇 공학자를 발굴해 소개하는데 있다.
71번째 인터뷰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김진수 교수다. 김 교수는 1989년생으로 서울과학고를 거쳐 2010년 서울대 전기공학부 학사, 2010년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기정보공학으로 석사를 받았다. 이후 KIST에 들어가 2012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바이오닉스 및 의생명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중간에 미국으로 유학, 2022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2022년 7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스탠포드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올해 3월부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서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05년 한국화학올림피아드(KChO) 동상(화학), 2006년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동상(수학), 2007년 삼성전자 특별상, 2014년 우수연구개발팀상(KIST)을 수상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웨어러블 로봇으로 엑소 스켈레톤(Exoskeleton,외골격), 엑소슈트(Exosuit) 등이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김진수 교수
Q.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는 전기공학과(1946년 설립), 전자공학과(1947년 설립), 제어계측공학과(1978년 설립)를 통합하여 199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저희 학부에는 67명의 교수님들이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약 1000명의 대학원생과 1000명의 학부생이 전력/전기에너지시스템, 통신/신호처리/전파공학, 로봇/자동화/제어시스템, 디스플레이/레이저/전자물리/광공학, 반도체/회로, 컴퓨터하드웨어/소프트웨어, 임베디드시스템, 바이오 응용 등의 폭넓은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Q. 최근 하고 계신 연구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파킨슨 환자의 보행 동결(Freezing of Gait) 증상을 방지할 수 있는 소프트 엑소슈트(Soft Exosuit)를 개발했습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파킨슨병은 만성적인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현재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는 불치병입니다. 뇌와 다리 근육 사이의 신경 통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함에 따라 여러 증상이 서서히 시작되고, 병이 진행될수록 점점 악화됩니다. 파킨슨병 말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심각한 보행 장애 중 하나로 보행 동결이란 증상이 있습니다.
보행 동결이란 환자 본인은 걸으려고 하는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 발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증상을 일컫는데요. 현재 약물적 치료(도파민 성분의 약 복용), 수술적 치료(뇌심부 자극술), 행동적 치료(청각/시각적 신호) 등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라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이번에 개발한 엑소슈트는 고관절 굴곡(Hip Flexion) 동작을 도와줌으로써 파킨슨 환자의 보행 동결 장애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슈트를 착용한 파킨슨 환자는 실내 보행에서 보행 동결 증상이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보행 거리와 걷는 속도 등 다양한 보행 특성도 개선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한 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한 개념 입증 연구였기 때문에 앞으로 일반화 가능성을 알아보는 등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피험자에 대한 결과가 획기적으로 좋아서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았고, 연구 내용은 몇 달 전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지에 출판되었습니다.
▲파킨슨 환자의 보행 동결 방지를 위해 개발한 Hip flexion soft exosuit(사진 왼쪽), 소프트 엑소슈트를 착용한 파킨슨 환자의 야외 보행 실험(사진 오른쪽)
Q. 2022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Soft Hip Exosuit Optimization for Improving Mobility in Healthy Young Adults and Individuals with Parkinson’s Disease”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어떤 내용인지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앞서 설명드린 의료용 로봇 이외에도, 저는 박사과정 동안 정상인을 대상으로 한 로봇도 개발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군용 웨어러블 로봇입니다. 이 연구는 미국 국방부 산하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연구비를 받아 진행한 프로젝트로, 궁극적인 목표는 군인들이 무거운 군장을 메고 행군할 때 필요한 신진대사 에너지를 줄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걷기를 도와줄 수 있는 로봇은 이미 몇몇 개발된 상태였기 때문에, 저는 걷기와 달리기를 모두 보조할 수 있는 로봇 개발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걷기와 달리기는 둘 다 고관절과 족관절에서 가장 큰 동력(Power)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고관절이 인체의 질량 중심(CoM)에 더 가깝기 때문에, 족관절보다는 고관절을 도와줄 때 로봇 구동기 무게로 인한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 팀은 걷기와 달리기를 보조하기 위해 고관절 신장 (Hip Extension) 동작을 도와주는 소프트 엑소슈트를 만들었습니다.
달리기를 도와주는 로봇은 선행 연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느 타이밍에 얼마만큼의 힘을 전달해야 효과적으로 보조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근골격계 시뮬레이션(Musculoskeletal simulation)으로 최적화한 토크와 역동역학(inverse dynamics)으로 계산한 생체학적 토크의 성능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찾아낸 달리기 보조력 패턴은 걷기 보조력 패턴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걷기와 달리기에 각각 적합한 보조를 위해서는 현재 사용자의 보행 모드를 판단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걸을 때와 달릴 때 위치 에너지의 위상이 정반대가 된다는 점에 착안해서, IMU 동작센서를 이용해 걷기와 달리기를 구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습니다. 이 알고리즘은 트레드밀 실험과 야외 지상 실험을 통해 총 5만 걸음 이상 평가되었으며, 99.99% 이상의 정확도를 보였고 외란에도 강인함을 나타냈습니다. 최종적으로 걷기와 달리기에 필요한 신진대사 에너지를 측정하는 실험에서, 이 로봇은 로봇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 비해 걷기의 경우 9.3%, 달리기의 경우 4.0% 신진대사 에너지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 로봇은 하나의 디바이스로 걷기와 달리기를 모두 보조할 수 있는 최초의 엑소스켈레톤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일련의 연구는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지와 사이언스(Science) 본지에 표지 논문으로 실렸습니다.
▲걷기와 달리기를 모두 보조할 수 있는 Hip extension soft exosuit (사진 왼쪽); Science 본지 표지 논문 (우)]
[개발한 Soft exosuit를 착용하고 참가한 5km 마라톤 대회(Bionic 5k)]
Q. 교수님의 주요 관심 분야가 웨어러블 로봇으로 엑소 스켈레톤, 엑소슈트 등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고령화 등으로 웨어러블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관련 분야 최신 동향이나 기술적인 트렌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군용, 의료용,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연구가 보행에 필요한 신진대사 에너지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보행 균형 향상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 및 경증 장애인들의 보행 균형 향상에 대한 수요는 상당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보행 균형을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표준 지표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보행 균형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향상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한 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신진대사 에너지 절감도 지금은 비교적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처럼, 향후 10년 이내에 보행 균형 개선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뀔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적으로는 다른 분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머신러닝을 사용하여 보행 균형 지표를 찾기 위한 연구, 다양한 동작에 대한 실시간 보행 주기 예측 연구, 그리고 사람의 신경-근골격계를 모델링하는 연구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웨어러블 로봇 분야는 피험자 실험 데이터 수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복잡하기 때문에, 머신러닝 적용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의 동작 분석 데이터의 표준 규격을 정하고, 모든 데이터를 공유하려는 시도들도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Q. 박사 학위 취득 후 2022년 7월 부터 2024년 1월까지 스탠포드대학교 기계공학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계셨는데 당시 어떤 연구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보행은 대부분의 동작이 시상면(sagittal plane)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웨어러블 로봇이 시상면 동작을 보조하는 형태로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상면 못지않게 중요한 동작이 바로 관상면(frontal plane) 동작입니다. 고관절의 외전(abduction)이나 내전(adduction) 동작이 관상면에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동작인데, 이 동작은 왼발과 오른발사이 무게중심 이동을 할 때 보행 균형을 잡는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는 동안 고관절 외전 및 내전 동작을 도와주어 보행 중 신진대사 에너지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Frontal plane hip exoskeleton (사진 왼쪽) , 스탠포드 바이오메카트로닉스 연구실 모임 (사진 오른쪽)
Q. 로봇을 연구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웨어러블 로봇은 학제간 연구가 필수적인 분야입니다. 전기공학,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생체역학, 의학, 그리고 의상 디자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며, 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 능통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지식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로봇을 개발하고, 그 성능을 피험자 실험을 통해 검증해야합니다. 아무래도 미국 대학에 비해 한국 대학들은 학과 간의 경계가 더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한 연구실에 모으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하드웨어를 개발한 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굉장히 긴 편이라 종종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것 같습니다.
Q. 로봇을 연구하시게 된 동기가 있다면?
처음에 로봇을 연구하게 된 동기는 순전히 제 흥미를 쫒아서였습니다. 학부생 2학년 때 중간고사를 마치고,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코엑스로 '아이언맨'을 보러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마블 세계관이 유명하지도 않았고, 그냥 시험기간이 끝난 기분을 내러 영화를 보러간 것이었는데 우연히 선택한 이 영화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지고 사고로 생긴 장애를 극복하는 기술을 본인 스스로 개발한 공학자. 제가 바라는 공학자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단순 흥미를 쫒아 시작하게 된 웨어러블 로봇 연구는 점점 더 목표가 명확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얻게된 지인이 주변에 하나, 둘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저의 친한 소꿉친구의 아버지께서는 공사현장에서 손이 깔리는 사고로 인해 손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몇 년 후에는 대학 동아리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척추가 손상되어 앞으로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해야한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사고를 당해도 첨단 기술력으로 장애를 바로 극복할 수 있었는데, 현실에서는 별다른 방안없이 고통받는 제 지인을 보니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신체장애란 나와 상관없는 이 세상의 누군가의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었는데, 가까운 지인이 갑자기 장애를 얻고 사고 전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장애란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어느날 불쑥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웨어러블 로봇 연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Q.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꿈과 목표가 있다면?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제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모든 장애인들이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길 소망합니다.
▲개발한 Soft exosuit를 착용하고 참가한 5km 마라톤 대회(Bionic 5k)
▲개발한 Soft exosuit를 착용하고 참가한 5km 마라톤 대회(Bionic 5k)
Q. 로봇공학자가 되려는 후배들에게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 조언해 주신다면?
제 경험에 국한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미국 대학에 비해 국내 대학들은 너무 이론 위주의 수업들로 교과과정이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동부와 센서를 가지고 로봇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프로젝트 기반의 수업이나 실험 과목이 거의 없었습니다. 로봇공학자가 되려면 직접 로봇을 만들어보는 hands-on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로봇동아리나 연구실 인턴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 추후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Q. 국내 로봇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로봇은 항상 미래 먹거리로 꾸준히 관심 받아왔지만, 아직까지는 일상생활에 널리 보급되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로봇들의 발전이 지난 몇년간 더욱 눈부시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보스톤 다이나믹스사의 아틀라스(Atlas)는 백덤블링을 하는 등 일반인의 운동능력을 상회하는 성능을 선보였습니다. 피규어 에이아이사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문맥을 이해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등 놀라운 기술진보를 이루었습니다. 1가정 1로봇의 시대가 정말 가까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맞추어 국내 로봇산업도 더 발전하기 위해선 로봇 분야에 전폭적인 연구비 지원과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원대한 목표를 가진 도전적인 연구 과제를 많이 지원한다면 국내 로봇산업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Q. 연구에 주로 영향을 받은 교수님이나 연구자가 계시다면...
제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박사 지도교수님이신 하버드 대학교의 코노 월시(Conor Walsh) 교수님입니다. 당시 제가 자주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은 "작은 세부 사항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큰 그림을 보라"였습니다. 항상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구에 집중하고, 조그마한 문제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제가 아직도 종종 떠올리며 지키고자하는 바입니다. 7년이라는 긴 박사 과정동안 물론 많은 고난과 시련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과정에서 연구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기 때문에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지도교수님의 가르침을 잘 새기고, 앞으로도 의미있고 영향력 있는 연구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규남 전문기자 ceo@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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