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올한해 전세계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급격한 에너지 가격 인상과 극심한 인플레이션,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 감염병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서민 경제는 한층 팍팍해졌고,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기업들이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실물 경제의 위기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로봇산업계도 올해 큰 부침을 감당해야만 했다. 산업용 로봇 설치대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희소식도 있었지만 불황의 깊은 수렁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마냥 잘 나갈 것만 같았던 자율주행자동차 업계도 복병을 만났다. 어느 새 중국산 서빙 로봇이 전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중국의 로봇밀도는 처음으로 미국을 앞질렀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해를 돌아보면 로봇산업계에도 한바탕 격랑이 일었다. 그럼에도 로봇산업계가 한단계 더 성숙해졌으리라 믿는다.
올해 전세계 로봇산업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10대 뉴스로 살펴본다.
① 전세계 산업용 로봇 설치대수, 역대 최고치 갱신

▲ ABB 산업용 로봇
전세계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대수가 51만 7385대로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2022 세계 로봇’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산업용 로봇 설치대수는 전년대비 31% 성장한 51만 7385대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 감염병 위기 이전인 지난 2018년보다 22% 증가한 것이다. 전세계 로봇 가동대수도 약 350만대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미국 ‘첨단자동화협회’(Association for Advancing Automation)도 북미 지역 산업용 로봇 판매 실적이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북미 기업들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 동안 18억 7500만달러(3만 5804대)에 달하는 산업용 로봇을 구매했다. 이 같은 수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수주 물량은 24%, 매출은 27% 증가한 것이다.
마리나 빌(Marina Bill) IFR 회장은 “로봇과 자동화의 활용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공급망 차질이 빚어지고, 여러 지역에서 역풍이 불어 생산에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주요 산업군에서 로봇 설치가 강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② 아마존, 아이로봇 인수

▲ 아이로봇 가정용 청소 로봇
올해 8월 아마존이 로봇청소기 업체인 아이로봇을 약 17억달러(2조2천억원)에 인수했다. 아이로봇은 세계 처음으로 로봇 청소기를 상용화한 기업으로, 대표 상품인 ‘룸바’ 로봇을 내세워 소비자 로봇 시장을 공략했다. 아이로봇은 가정용 로봇 개발을 통해 슬램(SLAM), 자율 내비게이션 분야에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ROS(로봇운영체제) 2' 기반의 교육용 로봇 플랫폼 ‘크리에이트’를 내놓고 교육용 로봇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아마존이 아이로봇을 인수함에 따라 가정용 스마트 제품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일반 소비자용 로봇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아마존은 이미 인공지능 음성 솔루션인 알렉사를 통해 가정용 디바이스 시장을 공략하고 가정용 로봇까지 출시했는데, 아이로봇 인수로 스마트 홈 디바이스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③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확산

▲ 샤오미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드럼을 치고 있다.
테슬라, 샤오미, 유비텍 등 기업들이 새로운 휴머노이드 로봇을 속속 공개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전기자동차 기업인 테슬라는 올해 9월 30일 미 캘리포니아주 팰로알토에서 열린 ‘2022 AI데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시제품을 공개했다. 옵티머스는 28자유도를 갖고 있으며, 2.3kWh 52V의 배터리팩을 장착해 저전력 고효율이 가능하다. 테슬라는 향후 3~5년 내 2만 달러 이하로 로봇을 판매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인 샤오미도 올해 8월 11일 베이징에서 열린 가을 신제품 발표회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사이버원'(CyberOne)을 공개했다. 이 로봇은 최대 21 자유도를 지원하며 각 자유도별로 0.5밀리초 수준의 실시간 응답을 구현해 인간의 다양한 동작을 모사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 로봇기업 유비텍은 세계 처음으로 수소연료 휴머노이드 로봇인 ‘워커(WALKER)’를 발표했다. 하지만 로봇의 사양 등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진 않았다.
④ 아르고AI, 자율주행차 사업 중단

▲ 아르고 AI의 자율주행차
포드와 폭스바겐(VW)이 합작한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업체 ‘아르고(Argo)AI’가 사업을 전격 중단하면서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
아르고AI는 미 시장조사업체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가 발표한 지난해 자율주행업체 순위에서 구글 웨이모, 엔비디아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기업가치가 70억달러를 넘었던 아르고AI가 속절없이 무너지자 자율주행자동차 버블이 꺼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흘러나왔다.
구글도 2009년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자율주행 기술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아직까지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애플카 프로젝트(타이탄)를 준비해온 애플도 전략을 수정했다고 한다. 제품 출시일을 연기하고, 레벨 5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고속도로에서만 지원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자동차가 도심을 달리는 것이 가까운 시일에는 힘들거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⑤ 중국 서빙 로봇 돌풍

▲ 푸두 로보틱스의 서빙 로봇
중국 서빙 로봇이 전세계 로봇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서비스 로봇 기업들이 우리나라, 일본, 북미, 유럽 시장 등을 전방위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일본 외식업체인 스카이락홀딩스는 자사 브랜드 매장에 무려 3000대에 달하는 중국산 서빙 로봇(푸두 로보틱스 제품)을 설치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푸두 로보틱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2000대 이상의 서빙 로봇을 공급했다고 밝힌 바 있다. 푸두 로보틱스는 북미, 유럽, 동아시아, 아시아 태평양,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 6대 지역, 60여개 국가, 600여개 도시에 총 4만대의 로봇을 납품했다고 밝혔다. 중국 서빙 로봇이 폴란드 피자 매장, 말레이시아 레스토랑 체인 ‘블랙캐년’, 태국 쇼핑몰인 센트럴월드 등 세계 곳곳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산 서빙 로봇의 진출을 바라보는 현지 로봇산업계의 근심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⑥ 레고, 마인드스톰 로봇 키트 판매 중단

▲ 레고의 마인드스톰
레고(Lego)가 마인드스톰 로봇 키트 판매를 올해말부터 중단키로 했다. 레고 마인드스톰 로봇 키트는 레고와 MIT의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이다.
레고 마인드스톰은 지난 1998년 처음으로 출시됐으며 NXT, EV3 등 제품으로 이어지면서 STEM 교육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레고의 마인드스톰 로봇 키트 판매 중단은 시장에 많은 로봇 키트들이 존재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데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레고는 올해 말 마인드스톰 로봇 키트 판매를 중단하지만 최소 2년 이상 모바일 앱을 지원할 것이라고 한다. 마인드스톰으로 로봇을 접했던 많은 로봇공학도들에게 마인드스톰의 판매 중단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⑦ 독일 '님브로', 'ANA 아바타 엑스프라이즈' 우승

▲ 님브로 팀이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독일 님브로(NimbRo) 팀이 글로벌 로봇 대회 ‘ANA 아바타 엑스프라이즈(ANA Avatar XPRIZE)’에서 우승하면서 500만 달러(약 72억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일본 최대 항공사인 전일본공수(ANA)가 후원한 'ANA 아바타 엑스프라이즈' 대회에는 전세계 99개팀이 참가했다. 최종 결선에는 10개국 17개팀이 경쟁을 펼쳤다. 이 대회는 텔레프레즌스와 가상현실(VR) 기술 등 새로운 로봇융합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데다, 총 800만달러라는 큰 상금이 걸려 있어 일찍부터 전세계 로봇과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주최 측은 참가 팀들에게 다양한 작업을 실행할 수 있으며, 사람의 감각, 행동, 존재를 원격지에 실시간으로 복제할 수 있는 물리적, 인간 작동 로봇 아바타 시스템 개발을 요구했다. VR과 텔레프레전스 기술의 결합은 로봇 산업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⑧ 보스턴 다이내믹스, 고스트 로보틱스와 특허 분쟁

▲ 고스트 로보틱스의 4족 보행로봇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경쟁업체인 고스트 로보틱스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접수한 소장에서 고스트 로보틱스의 ‘비전 60’과 ‘스피릿 40’이 자사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들 4족 보행 로봇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에 적용된 시각 정보 수집, 환경 데이터 처리, 계단 오르는 방법 등 7개의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 로봇의 선구자다. 많은 후발 로봇 기업들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길을 쫒아 4족 보행 로봇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앞선 연구 성과를 참고하되, 새로운 기술을 모색해야하는 로봇기업에게 4족 보행 로봇 기술 확보는 쉽지 않은 과제다. 이번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특허 침해 소송은 4족 보행 로봇 기술을 둘러싼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⑨ 로봇 무기화에 대한 우려 고조

▲ 폭발물 해체 로봇
로봇의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애질리티 로보틱스, 애니보틱스, 보스턴 다이내믹스, 클리어패스 로보틱스, 오픈 로보틱스, 유니트리 로보틱스 등 대표적인 로봇 기업들이 자사 제품의 무기화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업체에도 이를 촉구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한 바 있다. 로봇 무기 개발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오랫동안 로봇산업계의 화두 중 하나였다.
샌프란시스코 감독위원회는 경찰의 살상용 로봇 투입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로봇의 무기화에 대한 찬반 논란은 격화됐다. 당초 샌프란시스코 감독위원회는 경찰관들이 대체적인 완력을 사용하거나, 사태를 완화하는 전술을 사용하는 등의 조건을 강구한 후에 살상용 로봇을 배치 및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소수의 고위급 경찰관의 책임하에만 치명적인 로봇의 사용을 허가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비등하자 샌프란시스코 감독위원회는 경찰의 살상용 로봇 투입을 허용하는 종전 결정을 번복해야만 했다.
⑩ 로봇업계 구조조정 확산

▲ 뉴로의 실외 배송 로봇
로봇산업계가 구조조정과 인력 감원에 속속 나서고 있다. 기대만큼 로봇의 보급이 빠르게 이뤄지지않고 있는데다 경기불황 국면에 본격 들어가면서 로봇산업계가 구조조정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자율주행 배송로봇 전문기업 뉴로(Nuro)가 지난 11월 직원의 20%인 약 300명을 해고했으며, 실외 배송 로봇의 대표주자인 스타십 테크놀로지스도 최근 11%의 인력을 해고했다. 미국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자율이동로봇(AMR)업체인 시그리드(Seegrid)가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했으며 아마존에 인수된 아이로봇 역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로봇 스타트업들도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 농업용 로봇 스타트업인 아이언옥스도 절반에 가까운 직원들을 내보냈다.
로봇산업계의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일뿐이다. 그렇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않는 마음이다.
장길수 ksjang@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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