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 리츠메이칸대(立命館大学) 이주호 교수가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일본 리츠메이칸대(立命館大学) 이주호 교수는 17일 오후 코엑스에서 열린 '2026 로봇미래전략컨퍼런스-노인과 로봇:에이징테크·돌봄·모빌리티'에서 ‘초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일본의 에이징 테크 전략’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에이징 테크(Aging Tech)’의 변천사를 조명하며, 급격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일본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초고령화 사회에 속도감 있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특히 "로봇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노동에서 사람을 해방시켜 더 깊은 정서적 교감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기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에코시스템 구축을 당부했다.
기조 강연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기조 강연 내용>

▲ 일본 리츠메이칸대(立命館大学) 이주호 교수가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2025년 일본은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 전원이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로 진입하는 역사적 분기점을 맞았다. 65세 이상 고령화율 29%, 고령 인구 3600만 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인구 통계를 넘어 ‘돌봄 인력의 붕괴’라는 구조적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은 오는 2040년까지 약 69만 명의 돌봄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기존의 ‘인력 투입’ 방식으로는 이 같은 국가적 생존 위기를 넘을 수 없다는 점을 직시하고 있다. 일본은 이 같은 현상을 '2040년 문제'라 부르고 있다. 청장년층 감소로 공급은 늘지 않는 반면 수요는 가파르게 오르는 구조적 딜레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의 빠른 노령화 속도다. 한국은 일본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절반의 시간으로 압축해 겪고 있다. 실제로 2045년에는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가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여유가 없는 우리에게 지금은 에이징 테크(Aging-Tech) 생태계를 구축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에이징테크, 복지를 넘어 국가 생존 전략이 되다
일본에선 그동안 에이징 테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혜성 지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 시스템 유지를 위한 ‘핵심 생존 전략’이자 새로운 산업 동력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일본의 노령화 사회 대응 전략은 크게 세 축으로 나뉜다. 첫째는 로봇을 통한 물리적 지원이다. 간병인의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이동 및 목욕 보조 작업을 웨어러블 로봇 'HAL'이나 이승 보조 로봇 'Hug'가 대신하고 있다. 이는 간병인의 노동 환경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피간병인의 존엄성과 잔존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둘째는 정서 지원 로봇이다. 치료용 로봇 '파로(PARO)'와 반려 로봇 '러봇(LOVOT)'은 치매 환자의 불안을 줄이고 고령자의 고립감을 해소하는 파트너 역할을 수행한다.
세번째는 IoT 기반의 데이터 돌봄(DX)이다. 하드웨어 로봇 못지않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침대 매트리스 밑에 센서를 깔아 비접촉 방식으로 심박·호흡·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파라마운트베드의 '네무리 스캔(Nemuri Scan)', 초음파 센서로 방광 충만 정도를 감지해 배설 10~20분 전 알림을 보내는 트리플더블유의 'DFree'가 현장에 보급됐다. DFree 도입 현장에서는 간병인의 심리적 부담이 35% 줄었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DFree'는 실금 사고를 방지해 피간병인의 자존감을 지켜준다.
각종 기기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손해보험사(損保)가 개발한 통합 대시보드는 고령자의 실시간 컨디션을 한눈에 파악하게 해 불필요한 야간 순찰을 줄이고 긴급 콜의 우선순위를 자동으로 판단해준다. 또한 돌봄 자격증 보유자와 요양시설을 연결하는 매칭 플랫폼 '카이테크'는 2025년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 1위로 선정됐다. 일본에서 자격증을 갖고도 현장에 나서지 않는 잠재 인력을 시장으로 끌어낸 사례로, 한국에서도 요양보호사 자격증 보유자 250만 명 중 실제 활동자는 4분의 1에 불과해 유사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본다.
◇‘장롱 로봇’이 남긴 뼈아픈 교훈: 현장과의 미스매치

▲ 일본 리츠메이칸대(立命館大学) 이주호 교수가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일본의 여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초반, 일본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최첨단 로봇을 보급했으나, 정작 이 로봇들이 요양원 창고에 방치되는 ‘장롱 로봇’ 현상을 경험했다.
원인은 기술력이 아닌 ‘현장과의 괴리’였다. 착용에만 5~10분이 걸리는 웨어러블 슈트는 1분 1초가 급한 현장에서 방해물일 뿐이었고, 실험실에선 완벽했던 대형 로봇은 좁은 요양원 복도를 지나가지 못했다. 기기 충전과 오류 대응이라는 ‘디지털 노동’이 가중되면서 간병인들은 차라리 기술 없이 일하는 편을 택했다.
일본은 초기에는 엔지니어 중심의 화려한 로봇 스펙에만 집중했을 뿐, 현장의 업무 흐름을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허리 통증을 줄여주는 로봇을 착용하는 데만 10분이 걸린다면, 바쁜 현장에서는 결국 외면받게 된다. 이같은 실패 경험을 통해 일본은 공급자 중심의 첨단 스펙보다는 수요자 중심의 ‘적정 기술’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2015년을 기점으로 ‘기술’ 중심에서 현장의 ‘필요’ 중심인 ‘적정 기술’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된 배경이다. 현재 일본은 간병인을 공동 개발자로 참여시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개발 프로세스를 전면 수정했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문 정책 혁신과 ‘수가’의 힘
일본 에이징 테크의 안착 뒤에는 정부의 치밀한 설계가 있었다. 경제산업성이 R&D와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후생노동성이 현장 실증과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등 부처 간 유기적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강력한 유인책은 ‘장기요양 수가’와의 연계였다. 센서나 로봇을 도입해 야간 인력 배치 기준을 충족한 시설에 가산점을 부여함으로써, 기술 투자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완성했다. 이는 민간 시설이 자발적으로 기술을 채택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한국을 위한 제언: 인간을 해방시키는 기술
기술의 진정한 역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반복적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있다. AI와 로봇이 기록과 모니터링을 맡아줄 때, 사람은 비로소 고령자와 눈을 맞추며 정서적 지지와 존엄성 중심의 돌봄에 집중할 수 있다.
한국이 스마트 돌봄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시급하다. 첫째, 개별 기기의 난립을 막고 상호 운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주도 데이터 통합 플랫폼’의 표준화다. 둘째, 현장 간병인이 개발에 참여하는 구조를 제도화하고 규제 샌드박스를 확대해야 한다. 셋째, 기술 도입 시설에 대한 수가 가산 적용 등 명확한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 거울이자 기회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현명하게 대응한다면, 초고령사회는 위기가 아닌 새로운 미래 산업의 도약대가 될 것이다.
백승일 기자 robot3@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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