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의 휴머노이드 ‘칼레이도 9’ (사진=유튜브 캡처)
일본은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오랫동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해왔지만,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주도권을 완전히 내줬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나친 하드웨어 완벽주의와 과거의 성공 방식이 새로운 AI 로봇 시대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4일 “공장에 갇혔다:로봇 파이어니어 일본은 어떻게 AI 휴머노이드 붐을 놓쳤나(Stuck in the factory: how robotics pioneer Japan missed the AI-driven humanoid boom)”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일본 로봇 산업의 현주소를 집중 조명했다. 이 기사와 로봇산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일본이 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봤다.
로봇산업계에 따르면, 현재 로봇 산업의 패러다임은 미리 입력된 코드를 반복 수행하는 ‘정밀 기계’에서, 스스로 환경을 인식하고 학습하는 ‘체화 AI(Embodied AI)’로 급변하고 있다. 테슬라, 피규어 AI 등 미국 기업들과 중국의 스타트업들이 이 분야를 선도하며 막대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에 반해 화낙, 야스카와전기 등 일본의 대표 로봇 기업들은 여전히 자동차 제조 라인 등 통제된 환경에서 작동하는 산업용 로봇에 집중하고 있다.
이달 초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25 국제로봇전(iREX)’에서도 일본 기업들은 정밀 제어 기술을 앞세워 자동차 차체를 조립하거나 부품을 나르는 산업용 로봇 위주로 부스를 꾸몄다. 로봇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은 하드웨어 제조에는 능통하지만,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로봇 개발 경쟁에서는 크게 뒤졌다”고 꼬집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일본이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던 시절을 회고했다. 1970년대 초, 와세다 대학은 걷고 말하고 물건을 쥘 수 있어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인 ‘와봇-1(WABOT-1)’을 공개했다. 1980년대에 소개된 후속 모델 ‘와봇-2’는 건반 연주까지 가능했다. 자동차 기업 혼다는 같은 시기에 휴머노이드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수년간의 반복 과정을 거쳐 2000년에 ‘아시모’를 선보였는데, 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우주비행사를 닮은 이 2족보행 로봇은 2014년 도쿄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축구를 하기도 했다. 소프트뱅크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로봇 기업이었던 보스턴 다이나믹스(지금은 현대자동차 소유)를 소유하기도 했다.
시게미츠 타카아키 테크쉐어(Techshare) 사장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유명 휴머노이드 프로젝트 중 다수가 종료되었으며,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에서 과열되고 있는 최근의 휴머노이드 붐에 대해 일본은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휴머노이드는 이미 35년 전에 춤을 추고 있었다”며 “하지만 그들은 산업 현장에 기여하지 못했고 오로지 엔터테인먼트용이었다. 대중의 관심은 결국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뒤처진 원인 중 하나로 일본 특유의 제조업의 문화인 ‘모노즈쿠리(제조 분야 장인 정신)’를 꼽기도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중국 로봇 기업들은 로봇이 넘어지고 실수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얻어 AI를 학습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완벽한 하드웨어를 추구하느라, 시뮬레이션과 시행착오를 통해 급성장하는 AI 소프트웨어의 잠재력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혼다의 ‘아시모’나 소프트뱅크의 ‘페퍼’ 등 일본이 야심 차게 내놓았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단종된 사례가 일본 기업들을 더욱 위축시켰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자금력에서도 미국과 중국 기업을 제대로 따라가지못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미국의 휴머노이드 스타트업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면 일본은 대기업 중심의 보수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부족한 스타트업 생태계로 인해 기술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가와사키 중공업 등이 휴머노이드 칼레이도(Kaleido)를 개발하고 있지만, 경쟁국에 비해 속도와 AI 통합 수준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 전문가들은 감속기나 정밀 모터 등 로봇의 핵심 부품 분야에서는 여전히 일본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로봇의 두뇌(AI)’와 플랫폼은 미국과 중국이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이 부품 공급자로 남을지, 아니면 늦게나마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워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지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교육시스템도 AI 인력 육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 미즈호 은행 관계자는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디지털 경제는 질적 임계점을 넘어섰다”며,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 풍부한 AI 인재 풀, 그리고 실제 훈련 시나리오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광대한 내수 시장을 강점으로 꼽았다. 이에 반해 일본의 대학 시스템은 오랫동안 제조업이 주도하는 공학부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이는 AI 인재의 상대적 부족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전 세계 생산량의 38%를 차지하며 전통적인 로봇 분야에서 여전히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성공이 전략적 전환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백승일 기자 robot3@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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