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관련해 조금 말랑말랑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그러나 주제는 조금 묵직할 수 있다. 이 시간에 말하고 싶은 것은 로봇과 관련한 모든 사회적 이슈는 결국 ‘사람의 문제다’ 라는 것이다. 이 결론으로 향하는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는 사회학자다. 사회학이란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구체적으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의 행위,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 및 상호 작용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또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사회구조라든가 사회변동을 연구한다. 로봇 이야기에 왜 사회학자가 나왔는지 하는 궁금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향후 로봇이야 말로 가장 비중있는 사회학적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로봇 사회학’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로봇 사회학의 필요성
왜 로봇사회학이 필요할까? 이미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정의하든지 간에 이제 로봇은 우리에게 대단히 가까이 와 있는 새로운 존재다. 그리고 이러한 로봇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사회와 개개인의 삶의 방식들에도 당연히 거대한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사회를 변화시킨 사례는 많이 있다. 때로는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흔히 페미니스트들은 근대에 여성 해방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을 세탁기라고 말한다. 가사노동에서 해방됐고 남는 시간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여권 신장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일개 세탁기가 그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다면 로봇은 우리생활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 수준으로 바꿔놓을지 그 끝이 어디일지는 감히 속단할 수 없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로봇기술은 인간 바깥에만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기술 자체가 인간 몸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사이보그라든지, 포스트휴먼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들이 이미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존재 자체를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호모 로보틱스’라는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한 사회학적 주제다. 이는 사회학이라는 특정학문에 국한될 뿐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에 대해 잘 알고, 생각하고, 대비해야 할 이슈가 아닐 수 없다.
◆SF영화에서 실현된 미래
그 첫걸음을 SF영화로부터 시작해 봤다. 왜냐면 SF에 등장한 기술들이 영화 제작 당시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불과 20~30년 만에 현실에 존재하고 이젠 그닥 새롭지 않은 익숙한 기술로 등장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백투더퓨처(1985)’라는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에 나왔다. 주인공은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의 세상으로 간다. 바로 2015년이다. 우리에겐 과거가 돼 버린 그시절엔 먼 미래였다. 1985년 당시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기술들이 등장한다.
3D영화, 홀로그램,벽걸이 TV,화상전화,지문인식이나 음성인식으로 문 자물쇠를 열고, 웨어러블 컴퓨터로 사람들이 행동하고...지금은 그닥 새롭지도 않은 일반화된 이런 기술들이 30여년 전 영화속 상상력속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SF영화는 기술이 바꿔놓을 우리의 미래를 진단하는 대단히 유용한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영화에서도 보인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토탈 리콜(1990)에서는 가상현실이 처음 등장하고, 공항의 전신 투시 검색대도 이 영화 속에서 먼저 등장했다. 실베스타 스탤론의 데몰리션 맨(1993)에서는 자율주행차가 실현되고 주인공은 화상통화를 하고 손바닥으로 화면을 움직이는 아이패드를 보여주기도 하고...사이버 섹스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선 상상조차 못했지만 이미 일반화돼 있는 그런 기술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를 보면 빅데이터라든가 개인맞춤형 광고 기법, 홍채인식, 터치스크린, 헤드업디스플레이 같은 기술들이 빼곡히 등장한다. 그리고 기술들이 영화를 통해 선보인 후 약 20년만에 대단히 흔한 기술이 돼 버렸다.
로봇과 관련된 영화속에서도 우리는 로봇이 앞으로 우리가 겪게될 새로운 현상 등으로 우리의 미래를 점쳐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영화속에서 묘사됐던 그 로봇들이 하나둘 세상에 나오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크게 10개의 영화를 소개하면서 영화속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로봇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SF영화 속 로봇
▶인간을 위한 도구로서의 로봇(리얼스틸) vs 인간을 지배하는 공포로서의 로봇(터미네이터2)
리얼스틸(2011)은 로봇격투기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이 로봇을 조종해 조종된 로봇들이 격투를 하는 이야기다. 예전에 EBS에서도 이를 한 적이 있다.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는 장면은 묘사되지 않는다.
어찌보면 인간이 처음 꿈꿨던 로봇은 이런 로봇이었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의지대로 조종당하는 존재, 인간이 마음껏 조종하는 로봇이다. 나의 첫 로봇은 마징가제트였고 로봇태권V였다. 그런 로봇들이 인간이 조종하지 않으면 쇳덩이에 불과하다. 사실 인간들은 처음에는 이런 로봇들을 그려냈다.
그런데 점차 로봇기술이 발전하면서 피조물인 로봇에게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 두려움을 극대화시킨 것이 바로 터미네이터2(1991)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로봇기술이 발전하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인 로봇이 인간을 통제하는 그런 세상이 진짜 올까? 먼 미래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리 생에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역시 그렇다.
하지만 또다른 형태의 로봇에 의한 지배사회는 오고 있다. 나는 그것이 대단히 두렵다. 무엇인가 하면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로봇을 독점한, 또는 로봇을 장악한 인간이 그렇지 않은 다수의 인간들을 지배하는 일종의 로봇 계급사회, 그런 사회가 이미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
당장 알고리즘에 의해 지배당하는 배달 노동자들의 문제가 있다. 이는 전형적으로 로봇에 의해 종속된 인간, 알고리즘에 의해 종속된 인간이다. 하지만 그 알고리즘을 움직이는 것,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로봇이 아닌 인간이다. 그래서 로봇 기술이 인간에 의한 불평등, 또다른 계급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우려는 결코 쓸데 없는 기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지 도구이거나, 단지 지배적 독점 이런 관계만으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로봇과의 협력(로봇 앤 프랭크) vs 인공지능 로봇과의 사랑(허)
전직 금고털이였지만 지금은 혼자 사는 괴팍한 프랭크라는 할아버지와 집사로봇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재미있는 영화다. 할아버지 집에 집사로봇이 들어온다. 할아버지가 이 로봇에게 금고털이를 가르쳐 함께 성격 안좋은 이웃의 금고털이 방법을 알려주고 그 과정에서 우정을 쌓는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로봇과 협력관계를 쌓아가는 그런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다. 로봇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인 도구, 일방적인 피지배적 관계가 아니다. 인간이 로봇과 협력하면서 기술을 가르치고 함께 금고털이를 가르치면서 황혼기에 새로운 삶의 활력, 삶의 이유를 찾아 나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어떤 가치와 이익들이 발생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인간과 로봇이 우정을 쌓아 간다면, 감정을 교류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감정의의 유형들 가운데 사랑이란 감정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인간과 로봇간에 선을 넘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가능하다는 질문을 던지는 ‘허(Her)(2013)’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의 기존 규범에 의하면 ‘선을 넘는’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떤 미래학자는 향후 몇십 년 후가 되면 인간들끼리의 섹스보다는 인간과 로봇 간 섹스가 더 일반화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간혹 외신 토픽 수준으로 나오는 얘기지만, 로봇은 아닌 이른바 리얼돌(인형)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얘기도 나온다. 인간과 로봇 사이에도 사실은 이런 감정교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로봇을 인격화하고, 로봇에 감정을 투여하고, 때로는 로봇으로부터 위안과 위로를 찾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로봇 윤리(아이로봇) vs 로봇 권리(바이센테니얼 맨) 이제 관점을 바꿔 로봇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로봇의 윤리와 권리에 대한 것이다. 아이로봇(2004)에서는 로봇의 반란을 다루고 있다. SF작가인 아시모프가 제시한 유명한 ‘로봇 3원칙’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로봇은 결코 인간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이로봇에서 인간에 반란을 일으킨 로봇들은 반란의 명분을 “우리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인간이 지구를 해치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위해가 되는 일이다. 우리가 반란을 일으켜서 인간을 통제함으로써 지구 황폐화를 막아서 궁극적으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로봇3원칙을 충족시키는 행위다”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로봇은 이렇게 똑똑하고 이렇게 반란을 옹호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한번 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자꾸 로봇에게 ‘윤리’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가. 알고리즘에서도 ‘로봇 윤리’ 이야기가 나오고 로봇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이슈가 철학자와 윤리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이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로봇은 이미 사람을 죽이고 있다. 킬러로봇, 살상로봇, 로봇 폭탄들이 전쟁터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경찰이 킬러로봇을 이용해 인질범을 사살한 경우도 있다.
‘로봇 3원칙’ 중 가장 중요한 ‘제 1원칙’은 이미 깨지고 있다. 누가 깼나? 인간이 깬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 인간은 로봇을 이용해 다른 인간들에게 위해를 가하고 있다. 결국 로봇 윤리라고 하는 것은 로봇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인 것이다.
로봇권리 측면도 마찬가지다. 지금 로봇권리는 두가지 측면에서 얘기되고 있다. 하나는 로봇에 인격권을 부여해 세금을 부여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로봇세’를 물리자는 얘기가 유럽연합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 세는 로봇의 주인이 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로봇에 위해를 가하는 인간이 늘어나면서 로봇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결국 재산권 문제다.
주차장에 있는 내 차를 누가 긁고 간 것은 내 재산권이 침해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소유하는 로봇이 누구에겐가 위해를 당했다. 기능이 고장났다는 것은 재산권이 침해 당한 것이다. 로봇 권리라는 것도 결국 인간의 재산권에 대한 이슈다.
바이센테니얼 맨(1999)에서는 로봇권리에 대한 중요한 얘기가 나온다. 인간 주인을 사랑한 인공지능 로봇이 법률적으로 자신은 로봇이기에 허용되지 않는 인간과 결혼하기 위한 권리를 얻기 위해서 분투하는 내용이다. 영화 속의 로봇은 스스로가 권리의 주체로 다뤄지지만 현실에서는 로봇권은 사실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인간의 권리다. 그래서 인간은 로봇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왜냐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신체 강화를 위한 외골격로봇(아이언맨3) vs 인간과 기계의 합성체인 사이보그(로보캅)
다음은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아이언맨(2008)에서는 로봇갑옷을 입고 슈퍼히어로가 된다. 엑소스켈레톤(외골격)은 현실에서 가장 많이 상용화돼 있는 로봇 형태다. 이를 사용해 인간 본래의 근육보다 더 큰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산업현장,소방관,군대 등에서 많이 사용된다. 여기서 상상력을 더해 나온 영화다.
여기에 매우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아이언맨의 주인공은 세계 최고의 슈퍼리치다. 그의 기술력은 그의 자본력에서부터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인공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향상시키는 장치는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사용돼 왔다. 안경을 보자. 광학기술로 약화된 시력이라는 시각적 감각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알다시피 안경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몇만원 몇백만원까지 그 시장 가격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다. 하지만 몇만원짜리 안경 쓴 시력이 몇백만원짜리 안경쓴 시력보다 월등히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외피의 차이는 있지만 인체 신체 능력 강화 수준차는 없다.
그런데 이제 아예 기계장치가 인간의 신체와 화학적으로 결합한 사이보그 이슈가 되면 인체의 신체능력의 차이가 결국 지불능력에 따라 벌어진다. 얼마나 성능좋은 외골격장치를 신체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인간능력에 차이가 벌어진다. 당연히 성능 좋은 장치는 가격이 비싸겠다.
그래서 토니 스타크같은 재벌들은 외계까지 날아갈 수 있는 이런 외골격을 입을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또다른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산업사회 이후의 불평등은 모두 경제적 불평등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외골격 로봇이나 사이보그 기술들이 신체 안으로 들어와 보편화된다면 이제는 경제적 격차가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격차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새로운 종(種)적 차이가 대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적 능력 차이의 정도는 결국 지불능력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것이다. 결국 첨단로봇기술(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 차이)로 인해 오히려 우수한 종족과 열등한 종족이라는 원시적 차별 형태가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뛰어넘은 AI(엑스마키나) vs 의식의 업로딩으로 AI가 된 인간(트랜센던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의 이슈가 나온다. 어쨌든 앞으로 인간종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올 가능성이 높다. 그 안에서 여러 사회학적 이슈가 발생할 수 있음을 수많은 SF영화들이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인간이 다른 종과 함께 살았던 때가 아주 먼 과거에 있었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금은 사라진 열등했던 네안데르탈과 함께 살았던 오랜 역사가 있다.
인간은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또다른 종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환경을 맞게 될 것이다. 외골격 장착, 사이보그, 인간처럼 생각하는 AI 등 여러 새로운 종족과 인간의 동거가 시작되려 한다.
◆주객이 전도된 부질없는 질문들, 그리고 현실로 직면한 난제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인간들은 AI 로봇이 인간능력을 뛰어넘을까, AI 로봇이 자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AI 로봇이 지구의 다음 주인이 될 것인가 같은 질문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질문은 대단히 부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현실에서 질문해야 할 것은 이런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로봇소유자가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신 계급사회가 오고 있다. 알고리즘에 포획된 긱 노동자문제, 그리고 로봇 기술을 도입하고 특히 로봇기술 도입을 들러싼 인간들 간의 첨예한 이해 갈등, 그리고 AI에 편견과 혐오를 학습시키는 개발자와 사용자들들...그러다 보니 최근 ‘이루다’ 인공지능 챗봇사태같은 것이 일어났다. 사실 우리에게 직면한 현실적 문제는 이런 것들이다.
◆공존과 협력의 시너지
이런 것들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방안, 인간과 로봇 간에 어떤 해결 방안이 있을까를 보여주는 많은 사례가 있다. ‘알파고’보다 앞서서 인간을 꺾었던 ‘딥블루’라는 로봇이 있었다. 당시 체스 세계 챔피었던 러시아의 카스파로프는 이후 인간과 AI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한팀을 이뤄 체스경기를 하는 것이었다.
지난 2005년 그가 주최한 제 1회 프리스타일 체스대회가 열렸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대회 우승자는 세계 최고 체스 고수와 세계최고 AI기업이 만든 체스 AI 연합팀이 아니었다. 체스를 취미로 하는 대학 동아리학생과 그저 그런 수준의 중소기업이 만든 평범한 체스 AI의 연합팀이었다. 인간과 로봇의 협력, 그것도 평범한 인간과 평범한 AI의 협력이 이끌어낸 놀라운 시너지다. 어찌보면 “평범한 시민들이 로봇들이 어떤 관계를 가져가야 할까”에 대한 답은 바로 이런 방식이 아닐까 싶다.
서로 협력하고 내가 부족한 것을 로봇에게 의존하고, 로봇의 판단에 믿고 의지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인간은 지금까지 기술에 대해 쓸데없는 질문을 해왔을지도 모른다. 흔히 “달을 보라고 가리켰는데 달은 보지않고 손가락만 쳐다봤다”는 얘기를 한다. 사실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을까”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까” 등등의 질문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아닌 인간에 대한 질문
이제 로봇과 함께 협력 공존하고 만들어 가는 대단히 새롭고 다채로운 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들 안에서도 다양한 종으로 진화해 가는 포스트휴먼, 사이보그 등과 같은(어떻게 부르든 간에) 인간자체의 종의 분화와 그 안에서 다양한 종의 인간들이 공존 공생하는 사회에 대한 고민들을 사실은 지금부터 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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