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개인 돌봄 로봇 안전규격인 'ISO 13482'의 개정 논의에 나선 가운데 국제 안전표준 체계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미지=챗GPT로 생성)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을 벗어나 실제 가정으로 진입하는 시대가 다가오면서 국제 안전표준 체계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현재 개인 돌봄 로봇 안전 규격인 'ISO 13482'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의 안전 규격은 만들어진지 12년이 지나 새로운 로봇 기술과 로봇-인간 관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 산업용 로봇 중심의 안전 개념만으로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또는 개인용 돌봄 로봇이 마주할 복잡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재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은 최근 'IEEE 스펙트럼'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용 돌봄 로봇 또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안전 문제를 단순한 충돌 방지나 기계적 성능의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과 로봇이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서는 안전 자체가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ISO 13482 개정 작업이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개발 단계에서 실제 제품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만큼, 현재 만들어지는 안전 기준이 향후 산업의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새로운 안전 규격이 단순히 충격력이나 속도 제한을 규정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행동이 가정 환경에서 허용 가능한 로봇 행동인지를 정의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의 중요한 과제중 하나로 인간과 로봇의 ‘양방향 상호작용’을 꼽았다. 기존 안전 규격은 로봇이 사람에게 가할 수 있는 물리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실제 가정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인간 역시 로봇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관계가 형성돼 있다.
노인이 이동 중인 로봇을 붙잡고 균형을 유지하려 하거나, 어린아이가 로봇 주변을 갑자기 뛰어다니는 상황, 반려동물이 로봇의 이동 경로를 가로지르는 상황 등이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환경에서는 안전이 더 이상 로봇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과 로봇이 함께 구성하는 시스템 전체의 특성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원은 현재 ISO 13482 개정안이 위험 요소 식별과 위험 평가, 다양한 사용 시나리오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과 로봇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검증할 수 있는 시험 방법이나 강제적인 인증 체계는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비접촉 위험(non-contact hazards)에 대한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봤다. 비접촉 위험은 로봇이 직접 충돌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행동이나 판단에 영향을 미쳐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을 의미한다.
가정 환경과 산업 환경의 차이도 강조했다. 산업용 로봇은 작업 공간과 사용자, 작업 대상이 비교적 명확하게 정의돼 있다. 반면 가정은 어린이와 노인, 방문객, 반려동물 등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며, 환경 자체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는 이러한 요소들이 예외 상황(엣지 케이스)이 아니라 가정용 로봇이 반드시 대응해야 하는 기본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실제 가정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로봇을 학습시키고 있는 점도 새로운 과제로 지목했다. 하지만 각 가정의 구조와 문화, 생활 습관, 연령대가 모두 다른 만큼 특정 사용자 모델만을 기준으로 안전성을 정의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결국 안전 기준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기술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의사결정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누구의 행동을 기준으로 정상적인 사용자 모델을 정의할 것인지, 어느 수준의 위험을 허용 가능한 것으로 볼 것인지와 같은 문제는 단순한 엔지니어링의 이슈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돌봄 로봇의 주요 사용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고령층의 목소리가 현재 표준 개발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안전 규격 논의가 상대적으로 기술 전문가와 산업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미래의 휴머노이드 안전 규격이 기계 중심의 접근에서 인간-로봇 관계 중심의 접근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이 정해진 안전 출력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 상태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로봇 시스템의 외부에 있는 배경 요소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일부”라며 “차세대 휴머노이드 안전 프레임워크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승일 기자 robot3@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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