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자산운용사 크레인셰어즈(KraneShares)가 올해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실험·시범 운영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플랫폼 경쟁’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크레인셰어즈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전망과 주요 이슈를 담은 산업 보고서(제목:Humanoid Robotics In 2026: The Race From Pilot To Platform)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올해를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단순 '시범 운영(pilot)' 단계를 넘어 ‘플랫폼 경쟁(platform race)’ 단계로 진입하는 전환점으로 규정했다. 휴머노이드가 더 이상 연구실 데모나 홍보용 기술이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노동력 부족과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상용 인프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 확산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현장 배치
최근 휴머노이드 산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는 로봇이 실제 현장에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항공사 JAL(Japan Airlines)은 5월부터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중국 유니트리 로보틱스(Unitree Robotics)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해 수하물 적재, 컨테이너 운반, 기내 청소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업에서도 휴머노이드 실증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독일 자동차 업체 BMW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서 피규어 AI(Figure AI)의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 02’를 약 11개월 동안 시험 운영했다. 이 로봇은 3만대 이상의 ‘X3’ 차량 생산 과정에서 금속 부품 적재 업무를 수행했다.
BMW는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에도 헥사곤의 ‘이온’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BMW 경영진이 “기존 공급업체에 맡기던 작업을 내부화할 수 있다”고 언급한 점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 제조 마진 구조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유통·물류 분야에서는 아마존이 공격적인 휴머노이드 실용화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마존은 자회사 형태로 편입한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2족보행 로봇 ‘디지트(Digit)’를 물류센터에 투입했다. 여기에 소비자용 휴머노이드 시장 확대를 위해 뉴욕 로봇 스타트업 '파우나 로보틱스(Fauna Robotics)'를 인수했다. 크레인셰어즈 보고서는 이를 “산업용 로봇 플랫폼과 가정용 물리 AI 플랫폼을 동시에 구축하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의 존재감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 기업들이 제조 규모와 공급망 측면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 휴머노이드 기업 애지봇(AgiBot)은 지난해 1000대 수준이던 생산량을 2026년 수개월 만에 1만대로 확대했다. 또 중국 스마트폰 업체 아너(Honor, 荣耀)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뎬(闪电)'은 베이징 하프마라톤에서 21km를 완주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 이제 핵심 경쟁은 하드웨어에서 AI 모델로 이동 중
크레인셰어즈는 휴머노이드 경쟁의 핵심이 이제 하드웨어에서 AI 모델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비전언어행동(Vision-Language-Action·VLA)’ 모델이 산업의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모든 동작을 하드코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VLA 모델은 시각적 지각, 자연어 이해, 운동 명령 출력을 하나의 프레임워크에 통합할 수 있다. 로봇은 이제 일상적인 언어로 지시를 받으면, 해당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 프로그래밍 없이도 스스로 주변 환경을 해석하고 동작을 실행할 수 있게 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엔비디아의 '그루트(GR00T)' 시리즈와 구글 딥마인드의 '제미나이 로보틱스(Gemini Robotics)'를 꼽았다. 이 모델들은 추론을 위한 비전언어모델(VLM) 백본과 모터 제어를 위한 디퓨전 트랜스포머(Diffusion Transformer) 행동(action) 모듈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엔비디아는 합성 데이터 기반 시뮬레이션을 통해 로봇 작업 성공률을 약 40% 높였으며, 구글 딥마인드는 로봇이 현장에서 직접 코드를 생성하고 실행하는 기능까지 구현했다.
보고서는 미국 스타트업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도 주목할 기업으로 꼽았다. 이 회사의 최신 범용 모델 ‘파이(pi)-0.7’이 학습하지 않은 가전기기를 스스로 조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도 '스케일링 법칙' 따르기 시작...'월드 모델'의 부상
크레인셰어즈는 이제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이 대규모언어모델(LLM) 처럼 ‘스케일링 법칙’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올해 2월 엔비디아가 '아카이브(arXiv)'에 발표한 논문인 ‘에고스케일(EgoScale·Scaling Dexterous Manipulation with Diverse Egocentric Human Data)’은 “로봇도 인간 행동 데이터를 엄청나게 많이 학습하면 범용적 행동 능력을 습득할 수 있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LLM 분야에서 알려진 “모델·데이터·연산량을 키우면 성능이 꾸준히 향상된다”는 법칙이 로봇 분야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VLA 모델의 발전과 발맞춰 최근 로봇 학계와 투자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바로 '월드 모델(World Models)'이다. 월드 모델은 물리적 환경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체와 물리적인 힘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예측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이다. 로봇 학습의 고질적인 병목 현상인 '데이터 부족'을 해결할 핵심적인 열쇠로 인식되고 있다.
자본 시장은 이미 월드 모델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보고 올해 1분기에만 불과 6~7개의 월드 모델 전문 스타트업에 약 60억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휴머노이드 로봇 '챗GPT 모멘트' 아직 오지 않았다"
보고서는 중국 로봇산업의 강점이 단순한 ‘인건비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급망 없이 테슬라의 '옵티머스 2세대(Gen 2)' 로봇을 제작할 경우, 자재명세서(BoM) 비용이 약 4만6000달러에서 13만1000달러로 약 3배 급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휴머노이드 공급망은 단일 글로벌 승자가 나오기보다 양분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제조 실행력과 현장 배치 학습을 통해 하드웨어 스케일과 조기 원가 절감을 달성하고, 미국과 유럽 생태계는 프런티어 AI의 정교함, 시스템 아키텍처, 그리고 높은 신뢰성을 요구하는 안전 인증 기반 배치를 통해 차별화를 이룰 것이란 설명이다.
보고서는 이미 플랫폼 경쟁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공급망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단기적인 신호는 부품의 희소성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물량이 산업적 규모에 도달했을 때 생태계를 정의할 '플랫폼 역할'을 누가 선점하고 있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아직 휴머노이드 로봇의 '챗GPT 모멘트'가 오지 않았다며 대량 상업 배치가 가능하려면 인간의 감독 없이, 낯선 환경에서 로봇이 복잡한 작업을 신뢰성 있게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가장 많은 체화 학습 데이터(Embodied training data)를 축적한 기업들이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했다.
백승일 기자 robot3@irobo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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