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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레벨 4를 바라보며

로봇신문사 2020. 12. 23. 10:37
 
 

자동차가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있다. 위험을 감지하고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여 스스로 움직인다. 자율주행차라는 용어는 이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게 들리며 우리 삶에 곧 실현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을까? 미국자동차공학회(SAE)에서는 자율주행을 주행 참여도에 따라 총 6단계로 구분한다. 운전자가 모든 주행을 통제하면 레벨 0, 속도 및 차간거리 유지와 차로 유지와 같은 기능 중 하나를 지원하면 레벨 1, 특정 상황에서 속도, 차간거리 유지, 차로 유지 등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면 레벨 2, 고속도로 등 제한된 조건에서 스스로 주행하면 레벨 3, 지정구역에서 운전자 도움 없이 자율주행을 지원하면 레벨 4, 어떤 지역, 상황, 환경 무관하게 운전자의 도움 없이 목적지까지 스스로 이동하면 레벨 5에 해당한다. 레벨 3부터는 시스템이 전체 주행을 수행하는 단계다. 레벨 3는 차량 제어와 주행환경을 동시에 인식하지만, 비상 상황 시 운전 제어권 이양을 운전자에게 요청해야 한다. 레벨 4는 시스템이 전체 주행을 수행하는 점이 레벨 3와 동일하나 위험 상황 발생 시에도 운전자 개입없이 자율차 스스로 안전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나아가 레벨 4는 자율 주행을 할 수 있는 상황(지역, 날씨 등의 정의된 영역을 말하며 전문용어로는 ODD (Operational Design Domain:운행 설계 영역) 라고 부른다)에 제한이 있지만, 레벨 5는 제약이 없다.

레벨 1~3의 자율주행 기술은 사람의 운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카메라·라이다(LiDAR:레이저 거리측정 장치) 등의 센서만으로도 구현된다. 반면에 운전자의 개입이 없는 레벨 4부터는 차가 도로 정보 및 교통 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

 

레벨 4, 5의 완전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는 구글 웨이모는 저장된 정밀 지도와 라이다, GPS 등의 센서 데이터 융합을 통해 자율주행을 한다. 웨이모는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교외에서 레벨 4의 완전 자율주행 호출 택시 시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다른 자율주행 스타트업들도 뉴욕시 브루클린 내 공업단지에서 첫 상업용 자율주행 셔틀버스 운행을 시작하였으며, 텍사스 주 브라이언 시내에서 원격으로 조정 가능한 자율주행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19년 미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미국인의 60% 이상은 자율주행차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테슬라, 우버의 자율주행차 사고들이 아마 그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다.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안전한 주행으로 인정받으려면 2억7500만 마일(약 4억4256만9600km)을 사고 없이 주행해야 하지만, 최고의 수준으로 인정받는 웨이모도 아직 2백만 마일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니, 완전 자율주행이 한참 멀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국내 자동차 및 IT 회사들의 레벨 4 자율주행 관련 기술 개발 수준은 미공개 상태다. 국내 완성차 업체는 자율주행 레벨 1~2 수준의 ADAS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상용화에 주력하였으나, 최근에는 자율주행 관련 국내외 전략적 투자가 활발하다. 또한 이동통신 대기업, IT/SW 기업, 모빌리티서비스 업체 등 다양한 업체들이 자율주행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 중이다. 정부도 ‘자율 주행 기술 개발 혁신 사업’을 통해 레벨 4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을 기존 2030년에서 2027년으로 3년 앞당기기 위해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내년부터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렇다면 국내 레벨 4 자율주행을 위해 필요한 기술과 시급한 사항은 무엇일까?

레벨 4 자율주행인 지정구역에서의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정구역 내에서 주변 상황 인지와 정확한 위치인식 기술이 필요하다. 카메라·라이다 등의 센서를 이용하여 주변 동적/정적 물체를 구분할 수 있는 상황 판단 기술 및 주행 경로 예측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가장 이슈화되고 있는 일반 상황이 아닌 우천·강설·안개 환경, 주행 영역 내 사고 환경 등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에 대한 인지 및 회피 전략이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또는 복잡한 환경에서의 데이터 처리 및 자율주행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율주행 운행 구역 내 다양한 환경에서의 센서 데이터 수집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센서 데이터에 정밀지도 정보가 더해져 차량의 현 위치를 수 cm 이내로 정확하게 파악하여 사고를 예방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밀지도는 대부분 고가의 이동형 측량시스템 (MMS; Mobile Mapping System)을 이용해서 데이터 취득을 한 이후에, 매뉴얼한 후보정 등을 거치므로 신속한 업데이트가 어렵다.

웨이모는 정밀지도 제작에 이용한 MMS 차량을 그대로 자율주행 택시로 이용함으로써 정확한 위치 측위와 정밀지도 업데이트, 그리고 주행 데이터 저장을 동시에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차량의 가격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서비스에서는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정밀지도를 전국 단위로 제작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 시범운행을 위해서는 세종, 송도 등 특정 지역을 타겟으로 주기적이고도 신속한 업데이트가 가능한 정밀지도 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는 공개된 주행 중 센서 데이터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여, 대부분 국외의 주행 데이터로 학습하여 장애물 인식 및 분류 기술을 테스트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국내 자율주행 서비스의 가속화를 위해서는 웨이모, 우버 등과 같이 주행 중 센서 데이터를 공개하여 국내 개발진들이 기술 개발 및 테스트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통해 특정 지역 내에서 고속도로, 이면도로, 농어촌 도로 등 다양한 환경에서 모두 자율주행 운행이 가능한 차량 플랫폼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같이 GPS 신호가 잘 잡히고, 차선이 잘 보이는 환경에서는 자율주행이 어렵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GPS 신호의 오차가 많은 고층 건물 위주의 복잡한 도심지라든지 이면도로 구간이 많기에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정보통신·방송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비정형 주행 환경 대응이 가능한 자율차 탑재용 AI기반 인지, 판단 및 제어 솔루션 개발” 과제가 수행되고 있다 (2019~2021). 비정형 주행 환경이란 다양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도로에서 특수한 조합을 통해 발생되는 이벤트에 의해 형성되는 자동차의 주행 환경을 말한다. 다양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도로는 국지도로 일부(사거리, 이면도로 등), 농어촌도로, 스쿨존, 주차장 등을 말하며, 특수한 조합을 통해 발생되는 이벤트는 불법주차, 입간판, 날씨(비, 눈, 안개 등), 야생동물, 농기계, 유모차, 리어카 등이 포함된다. 이 정부과제에서는 복잡한 비정형 도로를 목표로 하여, 목표 지역의 정밀지도 제작 및 신속 업데이트 기술, 동적/정적 물체 인식 및 회피 기술을 이용하여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 중이다. 기술 개발 완료시, 자율주행 차량에 장착된 센서로 지정구역 내에서의 데이터베이스를 형성하여 다양한 자율주행 서비스에 공통 활용이 가능하며, 실시간성을 가지는 맵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레벨 2, 3 자율주행으로 운행하기 힘든 특정 상황 및 환경에서 개발을 시작하여 자율주행 기술 및 데이터 공유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자율주행 택시, 버스 또는 또 다른 운송 수단으로 범위를 확장시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의 성공적인 수행을 통해 자율주행의 레벨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기술들이 완성되더라도 골치 아픈 게 남아있다. 바로 사람의 개입 문제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현재까지도 사람의 의도를 완벽하게 인식하는 것은 난제로 남아있다. 예를 들어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며 눈치껏 운전을 하지만, 자율주행차가 눈치껏 운전을 하게 하는 기술은 쉽지 않다. 심리학, 인지과학 등의 다양한 기술이 같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 또한 사람은 항상 새로운 기술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려고 하기에, 자율주행차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200%까지 늘릴 수도 있다는 미국 에너지성의 아이러니한 통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사고 원인의 94%는 운전자이고, 지구온실 가스의 1/4이 교통 분야에 기인한다는 것은 자율주행차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득하고 있다. 앞으로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 기술이 등장한다면 우리도 운전대를 잡는 고충 대신 마음껏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운전면허증을 반납해야 할 노년층에 편입될 필자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명 현ㆍ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