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코너

[로봇신문 창간 7주년 특별 기고③] 로봇 스타트업의 허와 실

로봇신문사 2020. 6. 22. 10:40
 
 
 

처음 요청 받은 기고문 주제는 “로봇 스타트업 활성화 방안”이었는데, 제목을 조금 수정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정부가 관련사업 지정 투자펀드를 결성하고 국책 과제 지원을 기업중심으로 운영하자는 정책 건의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로봇 분야만큼은 한국에서 스타트업 하기 어렵다고 정책부터 탓하는 것은 맞지 않다.

거창한 성토보다 필자의 로봇기업 창업 20년을 되돌아 보며 겪었던 오판들과 아쉬움을 “허와 실”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공돌이 사장의 굴레 : 회사를 확장하기 위해 종종 투자 심사역과 미팅을 하게 되는데, 이 때마다 듣는 거북한 말이 ‘엔지니어 사장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다. 이 말을 들을 때면 로봇에 무지한 이들이 함부로 얘기한다는 생각에 때로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수년 전 경영전문대학원 문을 두드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 얘기가 옳았다. 의도적으로 로봇을 멀리하고 다른 업계나 비전공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깨달은 것은 엔지니어로서 기술과 제품에 너무 심취하여 기술 성과와 사업 결과를 직접적인 비례관계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술 경쟁력만 갖추면 저절로 고객이 찾아오고 매출이 오를 것이라고 착각한다. 유명인을 통한 광고로 구매가격이 턱없이 상승함을 고객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우리네 엔지니어 사장들은 마케팅 비용으로 몇 억을 배정하기가 쉽지 않다. 장비와 개발비엔 수십억을 퍼부우면서 말이다.

재무쪽을 보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더 이상 개발비를 자산으로 축적할 수 없고, 판관비용으로 떨어야 하는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에 맞춰 재무 계획을 세우고 이를 근거로 당장은 아니더라도 펀드 만기전에 이익을 실현하여 투자금 회수를 성사시킬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면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기본 사실을 간과하고 사업계획서 대부분을 기술력 자랑으로 채우는 것이 우리 엔지니어 사장들이 자주 하는 실수이다.

사업이란 이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므로 그 이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이 원하는 가성비 또는 가심비에 주목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아가 제품의 장점을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지속적 생산능력과 사후관리, 브랜드 신뢰도 또한 고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다.

우리는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투자자들이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주가수익비율(PER:Price Earning Ratio)이나 현금흐름할인법(DCF:Discounted Cash Flow)같은 방식을 이해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거지에게 10억을 주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물으면 금으로 된 깡통을 사겠다고 답한다고 한다. 최고의 기술력을 지향하여 그것을 사업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았었던 나 자신의 엔지니어 근시안은 금으로 된 깡통을 고집하는 거지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로봇이라는 마약 : 매니아가 해당분야에서 창업을 하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 과거 삼성이 자동차 산업에 손댄 이유가 이건희 회장 개인이 자동차광이었기 때문이라면 그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투자자본수익율(ROI:Return On Investment), 자기자본이익율(ROE:Return On Equity)에 대한 분석따위는 그리 의미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템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종종 사업의 본질적 목적을 간과하게 만든다. 그런데 로봇이라는 아이템은 다른 어떤 사업군보다도 해당 개발자에게 중독성이 강한 주제이다. 더구나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주변 사람들은 로봇개발자들을 영화속 로봇들을 만들어내는 신기한 존재로 대해주니 그 흥미진진함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결과적으로는 로봇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대 전제를 먼저 정하고, 그 다음 어떤 분야에 로봇을 적용하여 손익분기점(BEP:Break-Even Point)을 넘을 수 있을지 찾아 나선다. 나름 시장조사를 하지만 니즈(Needs:소비자 욕구 반영)가 아닌 시즈(Seeds:기술 반영)에서 출발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수 년을 공들여 NASA(미국 항공우주국)가 중력 없는 우주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볼펜을 개발하여 우주정거장에서 만난 러시아 우주인에게 자랑하자, 그것을 개발하느라 고생 많았겠는데 우린 연필을 사용한다고 답한 일화가 있다.

현재 서비스 로봇 솔루션 공급이 주력사업인 당사는 고객의 로봇 개발 요청이 오면, 우주 볼펜 일화와 함께 “그것이 꼭 로봇이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먼저 고민한다. 이 논리는 함께하는 직원들에게도 마찮가지로 적용된다. 초기엔 의기투합으로 버틸 수 있으나 로봇만 만들면서 평생을 만족할 수는 없다. 설사 그들이 약간은 그럴 수 있더라도 그들의 소중한 가족들은 그럴 생각이 1도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장이 작아서 안된다는 고정관념 : 정부 주재회의에서 이따금 제조 로봇 대 서비스 로봇, 어디를 지원해야 하는가를 논의하면서 시장의 크기가 언급되곤 한다. 어떤 로봇 분야가 유망하던 간에 현재 로봇산업이 이머징 마켓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현재의 시장 크기 보다 성장 가능성에 더 주목한다. 투자 목적은 오로지 주가 상승이며 매출액 자체는 그저 재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주식은 꿈을 먹고 자란다고 하겠는가.

물론 시장이 너무 작아 수 년 내에 개발비 회수 및 이익 실현이 불가능하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웬만한 분야의 로봇 사업이면 수백억 매출을 내고 코스닥에 상장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그 이후 성장에 대해서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너무 돈놀이 투자자들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본다고 비난할 수 있으나 기업 대표 자신이 그 기업의 가장 큰 투자자라는 책임과 의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내 여건 : 삼성, 엘지, 현대 같은 국내 굴지 기업들과 미국의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심지어는 다소 오래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의 공통적인 차이점이 있다. 중국 대표기업들도 미국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업 창업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생존해 있다는 점이다(단명한 스티브잡스를 제외하고 말이다). 다시 말하면 창업해서 한 세대 안에 세상의 페러다임을 뒤바꾸는 혁명을 이루는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한다는 것이며, 주요 기업 창업자의 3세들이 주축인 국내 산업계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국내에서는 엘런 머스크나 마크 주커버그, 제프 베조스같은 인물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주입식 교육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좀 멀리 나간 느낌이고, 직접적인 이유는 투자기반의 취약성을 꼽을 수 있겠다. 한때 IMF직후 밴쳐투자붐에 대해 거품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당시 그런 투자 분위기 때문에 오늘날 네이버, 엔씨/넥슨, 카카오 같은 기업들이 이 땅에서 활동하고 있고 일본의 국민 메신저까지도 한국 기업 제품이다.

그런 투자 분위기가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은 투자자들의 투자회수 터전인 주식시장, 특히 스타트업의 무대인 코스닥이 약하기 때문이다. 한 저명한 작가가 인문학서에서 뉴욕 월스트리트를 거대 불로소득 사기집단으로 신랄하게 비판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월스트리트가 없으면 실리콘 벨리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정책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 로봇 스타트업 여건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케이팝(K-POP), 케이뷰티(K-BEAUTY)에 이어 K-방역까지 한류가 전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고, 한국시장이 새 것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트렌디 마켓(Trendy Marke)이며 1인당 구매력평가(PPP:Purchasing Power Parity)가 일본을 앞선 것도 고무적이다.

세계 각국 상황이나, 스타트업의 중요 체크업 포인트 등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지면 관계상 간단히 결론을 매듭지으면 많은 사람들이 심기일전하여 스타트업에 도전하기를 기대한다. 성공 가능성이 큰 것은 아니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그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로봇신문사  robot@irobotnews.com